■ 들어가며
■ 조선 시대에 레즈비언은 존재했는가?
■ 세자빈 봉씨, 그녀는 레즈비언이었을까?
■ 나오면서
조선왕조실록 세종18년을 살펴보면 세종의 며느리였던 세자빈 봉씨의 기록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 세자빈 봉씨의 기록은 조선시대 ‘레즈비언’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당시 실록의 내용을 살펴보면 세자빈 봉씨 이외에도 이전의 궁녀들 사이에 ‘동성 교제’ 혹은 ‘동성 간 성행위’가 빈번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항상 듣건대, 시녀와 종비(從婢) 등이 사사로이 서로 좋아하여 동침하고 자리를 같이 한다고 하므로, 이를 매우 미워하여 궁중에 금령을 엄하게 세워서, 범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살피는 여관이 아뢰어 곤장 70대를 집행하게 하였고, 그래도 능히 금지하지 못하면 혹시 곤장 1백 대를 더 집행하기도 하였다. 그런 후에야 그 풍습이 조금 그쳐지게 되었다. 내가 이러한 풍습이 있음을 미워하는 것은 아마 하늘에서 내 마음을 인도하여 그리 된 것이리라. 어찌 세자빈이 또한 이러한 풍습을 본받아 이와 같이 음탕할 줄 생각했겠는가.(세종실록 4집 36면)
궁녀들 사이에 어떤 구체적인 로맨스가 존재했는지, 이들이 얼마나 자의식적으로 자신을 동성애자로 정체화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몇몇 야사와 실록 등을 통해 궁에 기거했던 궁녀들과 시녀, 여종, 노비들 그리고 여승들 사이에 동성끼리의 정서적, 신체적 교류, 성행위 등이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전완길, 1980; 신명호, 2004; 박영규, 2004) 세자빈 봉씨의 경우에는 신분의 높음 때문인지 봉씨와 봉씨가 사랑했던 여종 소쌍 사이에 있었던 애정 행동이 실록에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물론 실록을 기록했던 관리들이 모두 남성이었고, 실록이라는 문서의 성격 상 세자빈으로서 봉씨가 폐위되기에 마땅한 근거들로써 봉씨의 행동 중 일부가 선별되었을 것이다. 다음은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세자빈 봉씨와 소쌍의 ‘음탕한’ 행동들이다.
세자빈 봉씨.hwp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