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경영학]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평가 조사분석 )

1. 서론 - 광주항쟁의 인식

2. 5․18 광주항쟁의 배경

3. 5․18 광주민중항쟁의 일지

4. 시민 전쟁으로 본 광주항쟁

5. 민주와 민족통일의 도정에서 본 광주항쟁

6. 결 론

1. 서론 - 광주항쟁의 인식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광주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반 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전두환을 비롯한 신 군부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따라서 5·18민중항쟁은 부정한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권적 운동으로서 시민들이 무장을 통해서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대항했던 시민의 자발적 민주항쟁이다.
5·18민중항쟁의 도화선은 전남대 앞에서 시위대와 7공수여단과 첫 충돌이 시작된다.
당시 전남대 앞에는 완전 무장한 7공수여단 33대대가 교문을 통제하고 있었고 학생들은 교문을 통제하자 자연스럽게 전남대 정문 앞 시위를 하면서 노래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당시 학생들이 외친 구호는 비상 계엄 해제하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휴교령을 철회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등이었다.
그러나 공수 부대 원의 화려한 휴가의 작전명령은 무고한 학생과 시민을 무차별 폭력 진압하고 말았다.
시민들이 보고있는 가운데 벌어진 그들의 폭력 만행은 정상적인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의 무자비함 그 자체였다. 그들은 시위 진압을 개시하자마자 시위 가담여부와 상관이 없는 도로변의 젊은 사람들 아주머니, 어린이, 심지어 노인들까지도 무차별로 쫓아가 곤봉으로 때리고 짓밟았다.
눈앞에서 학생들이 계엄군의 살인적인 폭력 앞에 당하는 것을 본 시민들은 곳곳에서 도로 옆 화단을 부수워서 계엄군과 투석전을 벌이기 시작하였으며 5월 18일 오후부터 날마다 금남로 등지에는 수 만 명씩 몰려들어 야만적인 계엄군의 만행을 규탄하였다. 19일 시위대 수가 5000여 명으로 불어나자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곤봉과 착검 소총으로 시위대를 진압하였으며, 관공서와 공공건물이 폐쇄되는 등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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