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Ⅱ. 본론
1. 명성황후의 외교활동 브리핑
(1).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2).1882년 임오군란
(3).1884년 갑신정변
(4).1894년 청일전쟁
(5).1895년 삼국간섭
2.명성황후에 대한 개인적시선
서구인들이 본 명성황후
3.명성황후에 대한 사회, 정치적시선
(1) 수구분당인가 개화당의 영수인가.
1)개화정권의 막후
2)수구와 개화 사이에서
(2)외교전략에 뛰어난 책략가
1)친청인가 반청인가
2)미국과 러시아에 대한 기대와 좌절
Ⅲ. 결론
Ⅳ. 우리조의 생각
Ⅴ.참고문헌
Ⅱ. 본론
1.명성황후의 외교활동 브리핑
(1).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 일본과 맺은 최초의 문호 개방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이다. 쇄국정책으로 굳게 닫혀있던 조선의 문호를 개방하여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로 일본과 맺은 조약으로 이 조약으로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 다음으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2).1882년 임오군란 : 선진문물이 들어오면서 기존의 구식 군대가 밀려나고 신식군대인 별기군이 창설되었다. 기존의 구식 군대는 자신들이 일자리가 없어지고 밀려있던 임금마저 모래를 섞은 쌀로 지급되자 이에 분노하여 은퇴한 대원군과 결탁,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민 씨 정권을 향해 반란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명성황후는 궁녀로 변장해 피신하고, 흥선대원군이 재집권한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다시 청나라를 이용하여 대원군을 쫓아내고 권력을 탈환한다. 청나라는 명성황후를 통해 다시 한 번 조선에 대해 세력을 다지고 일본은 임오군란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인을 빌미로, 조선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주장하며 청나라와 대립한다.
(3).1884년 갑신정변 : 개화사상이 들어오고 개화사상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은 온건개혁파와 급진개혁파로 나뉜다. 그리고 임오군란이 발생한 후 청나라와의 보수적인 외교를 계속한 명성황후에 대해 급진개혁파는 반발한다. 김옥균, 박영효 등의 급진개혁파는 일본의 힘을 빌어 정권을 장악하지만 3일 만에 청군의 개입으로 모든 상황은 원상복귀 된다.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의 영향력을 두고 다시 한 번 극도로 대립하게 된다.
(4).1894년 청일전쟁 : 조선의 영향력을 두고 격렬하게 대립하던 청과 일본은 마침내 전쟁을 벌이게 되고 평양, 압록강 등지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전투에 일본은 승리를 거둔다. 결국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청나라에 청나라 일 년 예산의 2.5배에 해당하는 거액의 위약금과 요동반도 등을 차지하게 된다. 명성황후는 조선의 안정을 위해 전통적으로 우호관계에 있던 청나라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일본의 세력과 이노우에 가오루를 이용, 일본과의 연결 고리를 남겨둠과 동시에,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여 러시아 공사관 위베르를 통해 러시아와의 접근을 시도한다.
(5).1895년 삼국간섭 : 일본이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는데 두려움을 느낀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삼국간섭을 실시하게 된다. 이후 일본은 요동반도를 청나라에 반환하고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힘을 보고 러시아를 이용하여 일본을 조선에서 몰아낼 생각을 한다.
(6). 1895년 을미사변 : 러시아가 조선에 대한 세력을 강화하는 것을 우려한 일본은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던 명성황후를 살해한다
2. 명성황후에 대한 개인적 시선
-서구인들이 본 명성황후
똑똑하고 지적이고 친절한 명성황후의 첫 인상
1) 모든 점에서 훌륭한 여성이라고 서구인들은 그를 칭찬했다. 지성있고, 교육받았고 성격이 강해 굽힐 줄 모르고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대원군이 감당하기 어려운 적수라고 외교관들은 그녀를 칭찬했다. 특히 서양 여성들이 그녀의 매력과 친절에 끌렸다. 그들에게 비친 명성황후는 폭력과 음모에 겁이 많은 고종을 돕다 자기 생명마저 잃어야 했던 비운의 왕비로 보였다.
1884년 서울에 온 영국의 전권대사인 아버지 파크스 경(Sir. Harry Parkes)을 동행한 딸 파크스 양은 5월 7일 궁전에 초대되어 만난 민비의 첫 인상을 이렇게 서술했다. “왕비는 키는 아주 작지만 당당하고 처신할 줄도 알고 영리하고 명랑하며 적은 남자인 왕을 다스릴 줄 아는 용감한 여자라는 인상을 받았다.Miss Pakes의 여왕을 만났던 인상을 쓴 당시의 편지가 Longford. 책 pp. 317-318.에 전문이 실려 있다.
2)여왕은 진찰하기 위해 1885년 (고종 22) 알렌 의사과 함께 경복궁에 간 여의사 벙커(Annie Ellers Bunker)는 민비를 강한 의지와 성격의 여인이지만 친절하다고 표현했다. 벙
[근현대사] 명성황후 -조선 측의 입장.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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